베니스 곤돌리에
어느 날 곤돌라에 오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곤돌라에 편안히 기대앉은 베니스인처럼 아드리아해의 주인이 된 것 같다."
괴테처럼 아드리아해의 주인이 되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베니스의 명물, 곤돌라와 곤돌리에를 만나보면 어떨까? 좁다란 수로를 따라 기다란 노를 젓는 뱃사공, 곤돌리에는 아무나 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격을 얻는다. 그들이 진정한 곤돌리에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며 베니스의 전통과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자.
베니스 곤돌리에
곤돌리에가 되는 일은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을 수반한다. 400시간의 수업을 수료하고, 최소 4개 국어를 구사하며, 곤돌라의 조타를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이탈리아의 역사, 베니스 랜드마크에 대한 이해까지. 도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데다 연간 소득만 수 억대. 베니스에서 나고 자라 주소지를 가진 사람에게만 자격이 주어져 대대손손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승계된 경우가 많다. 다소 폐쇄적이지만, 그만큼 전통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고소득 직종, 곤돌리에
- 2015년 기준 곤돌리에들이 연간 최대 약 2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베니스 곤돌라
복잡하고 비좁은 수로 사이를 여러 대의 곤돌라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지나가는 모습을 관찰해 보자. 그들은 배의 끄트머리에 서서 기다란 노를 이용해 물을 젓는다. 곤돌리에의 손길에 의해 절도 있게, 때로는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처럼 움직이는 곤돌라. 다른 모든 면에서 능력이 뛰어나도 배를 제대로 운항할 수 없다면 곤돌리에라는 타이틀을 쥘 수 없을 것이다.
💡 배 위에서 중심 잡는 법
곤돌라의 선체는 오른쪽이 왼쪽보다 24센티미터 더 좁은 비대칭 모양이다. 그 결과 곤돌라는 가만히 있을 때도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지지만 곤돌리에의 몸무게 덕에 무게 중심이 잡혀 한쪽에서만 노를 저어도 배가 똑바로 나아간다.
곤돌라 스쿨에서
조정 실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관문이 예비 곤돌리에들을 기다리고 있다. 곤돌라 학교에서 그들이 치러야 할 시험은 조정 과목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는 모두 베니스의 문화 전도사이자 관광가이드의 자격을 검증하는 절차이다. 곤돌라 길드의 일원이 되어 베니스 역사와 랜드마크, 문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을 학교에서 1년간 배워야 하고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추가로 할 줄 알면 더 좋다.
베니스 곤돌라
길드의 일원으로
다양한 과정을 거쳐 훈련을 받은 뒤에 1년간 인턴십을 한다. 다시 다섯 명의 프로 곤돌리에 앞에서 시험을 본 뒤 통과해야 비로소 곤돌리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최소 반년을 다시 수련한 뒤, 마침내 정식 곤돌리에로 인정받게 되면 활동할 지역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 의회에서 곤돌리에 수를 조정하고 있기에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곤돌리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 최초의 Donna
2010년, '조르지아 보스콜로'가 최초의 여성 공인 곤돌리에 자격을 얻었다. 베니스에서 9백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곤돌리에가 탄생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면허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승계되어왔으며 시험을 치를 자격도 남성에게만 부여되었지만, 갖은 노력 끝에 그녀는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매년 많은 여성이 곤돌리에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참고로 그녀가 노를 젓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줄을 선다고 한다.
베니스 운하
길을 걷다 "어이!"하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와도 놀라지 말 것. 곤돌리에들이 모퉁이를 돌 때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는 외침이다. 미로 같은 수로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작은 배의 항해사, 곤돌리에. 그들은 가끔 세이렌이 되기도 한다. 유혹당한 여행자들을 실은 곤돌라가 지나간 수로마다 노랫소리가 물결 위로 흩어지는 곳. 베니스의 가장 대표적인 두 곳의 곤돌라 선착장을 소개할 테니 물의 여정을 떠나보자.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 베니스의 랜드마크만 보고싶은 여행자
탑승장소 산마르코 광장 앞 곤돌라 선착장
주소 Piazza San Marco, 30100 Venezia VE
베니스 리알토 다리
✌🏻 베니스의 좁고 큰 운하의 매력에 빠지고 싶은 여행자
탑승장소 리알토 다리 옆 곤돌라 선착장
주소 Sestiere San Polo, 30125 Venezia VE
💡 탑승 Tip
- 운영시간 수시로 탈 수 있으나 하절기와 동절기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 운영일정 하절기 4월-8월, 동절기 9월-3월
- 운행시간 20-30분
- 이용요금 주간 운행 €80, 야간 운행 €100이 평균이다. 계절에 따라 기준 시간이 달라지니 미리 확인하자.
- 리알토 다리보다 산마르코 광장 쪽이 20유로 정도 더 비싼 대신 뷰가 넓게 트여있다.
-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해 질 무렵 시간대가 가장 좋으며, 모자와 물을 준비하면 좋다. 겨울에는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탑승하길 추천한다.
4-6명의 인원을 모아 탑승하자. 성수기에는 바가지 요금에 주의할 필요가 있으니 탑승 전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가격을 깎아주기도 하니 곤돌리에를 무장해제 시킬 말을 미리 외워보자.
"Un po’ di sconto(운 뽀 디 스꼰또)” 깎아주세요
"Per favore(뻬르 파보레)" 제발
베니스 곤돌리에
곤돌리에는 고요하게 물살을 가르며 베니스 곳곳을 여행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또 다른 고요함이 있다. 베니스는 소리 없이, 서서히 가라앉는 중이다. 도시가 침잠하는 언젠가, 곤돌리에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미래까지도 물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선착장으로 향하는 곤돌리에. 그들이 노와 함께 매일 손으로 단단하게 붙드는 것은 삶에 대한 긍지와 애착이 아닐까. 곤돌라에 오른다면 그들과 뜨거운 악수를 해보자. 굳은살 박인 손바닥에서 베니스를 향한 사랑과 온기가 전해질 것이다.
💡 La Serenissima, 이탈리아어로 '고요하다'는 뜻이다.